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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admin) 시간 2019-03-11 20:5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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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를 만들다, 보이지 않는 공기로

 

‘만지지 마세요.’

 

전시회장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작품과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주세요. 함부로 만지거나 움직이지 마세요’, 관객에게 조심하기를 당부해 작품과 관객을 분리한다. 고홍석 작가의 전시회는 다르다. 만져보라고 할 뿐 아니라 ‘망설이지 말고 들어가 보라’고 한다. 들어가서 온몸으로 작품과 부대껴보라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이곳이 전시회장인지, 상상의 세계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둥글고 팽팽한 풍선들이 앞을 막아서지만, 가볍고 자유로운 풍선을 헤치고 나아가면 또 새로운 길이 열린다. ‘동심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는 그렇게 가까이 있었다.

 

벌룬 아티스트 고홍석 씨

▶ ‘예술은 생각하지 마!’ 전시 중인 고홍석 작가 ⓒC영상미디어

고홍석 작가는 ‘벌룬 아티스트’다. 풍선으로 작품을 만들고, 공기로 형상을 짓는 ‘공기조각가’다. 어린아이들은 풍선을 보면 바로 신이 난다. 만져보고 싶고, 풍선을 들고 달려보고 싶은 마음에 천장에 달린 풍선도 떼어달라고 떼를 쓴다. 어른이 되면 다르다. 터질까 봐 무섭고, 얼마 가지 않는 풍선은 골칫거리다. 풍선은 일상과 떨어진, 이벤트 같은 존재다. 고홍석 작가에게 풍선은 ‘인생’이다. 한없이 부드럽고 둥그렇지만, 이내 소멸해버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허무함보다는 아쉬움이다. 그 아쉬움이, 그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공기를 빚어 작품을 만들게 한다.

하나의 문이 닫히자 다른 문이 열렸다

“젊었을 때 병을 앓으면서 조금씩 시력을 잃게 되었어요. 10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는데 20대에는 방 안에만 갇혀 있는 시간이었죠. 그때 저를 그 방에서 꺼내준 게 풍선이었어요.”

신문에 딸려온 백화점 문화센터의 풍선아트 특강 프로그램을 본 게 시작이었다. 보고 따라 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진도는 더뎠지만, 그만큼 풍선의 질감과 촉감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의 수강생은 강사가 만들어놓은 작품을 보고 따라 하는 게 전부였지만, 시력이 약했던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작품에 구현했다. 풍선으로 만들 수 있는 세계는 무궁무진했다. 하나의 문이 닫히자 다른 문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해준 게 풍선이라 마음이 더 남달랐죠. 1998년에 전문가 교육과정을 이수했고, ‘풍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인터넷 카페도 만들었어요.”

당시 동호회 회원이 1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풍선 아트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문 서적은 없었다. 이론서의 필요성을 느낀 고홍석 작가는 <고홍석의 매직 벌룬 노하우>라는 책도 펴냈다.

“풍선으로 열린 세계가 많아요. 책도 낼 수 있었고, 강좌도 열 수 있었고요. 제가 풍선 아트를 가르칠 때는 수강생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만들도록 해요. 저와 똑같은 모양을 만들 필요는 없다고요.” 

강의를 하면서 지금의 아내도 만났다. 수강생과 강사로 만났던 두 사람은 이제 고홍석의 작품 세계에 두 개의 기둥이 됐다.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세계가 제대로 구현이 됐는지 확인해주고 점검해주는 게 아내의 역할이다.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저를 만나고 나서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알았다’고요.”

2014년 출간한 라는 책은 보는 이가 스스로 작품을 디자인해 구현할 수 있는 법을 안내한 책이다. 이 책은 한국뿐 아니라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홍콩, 일본에서도 발매됐다. 태국에서는 고홍석 작가를 벌룬 페스티벌에 초대했다. 2015년에는 대만에서 열린 풍선 전시회에 초청됐다. 2016년과 2017년에는 잠실창작스튜디오의 입주 작가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18년에는 ‘Passion Connected, Challenge!’ 전시와 ‘2018 디자인 페스타’에 참여했다. 그곳에서 풍선은 그저 분위기를 돋우는 조형물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벌룬 아트가 ‘예술의 한 분야’라는 걸 인정받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전시회를 하더라도 심심치 않게 “이거 풍선 하나 주세요”라고 말하는 이들을 만났다. 작품이라 어렵다고 하면, “그깟 풍선, 얼마나 한다고…” 하는 반응도 있었다. ‘도대체 예술의 기준은 무엇일까’, 고홍석 작가가 벌룬 아트를 하면서 깊어진 고민이다.

“풍선도 물감도,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도 쓰이지만 아이들‘만’의 장난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있듯이, 풍선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벌룬아티스트가 있는 거죠.”

미술비평가 황정인 씨는 “고홍석은 벌룬 아트라는 분야가 국내에서는 아직 이벤트성 행사의 장식적, 보조적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꾸준히 탐색하고 있다”고 평했다. 대중성 면에서는 어떤 예술 장르에 못지않게 인식이 확산되어 있지만, 예술성이나 미학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비평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못한 게 사실이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홍석 작가는 벌룬 아트의 ‘길을 내고 있는 사람’이다.
 
“풍선을 통해서 저는 인생을 배웠어요. 그 마음이 2016년 전시 ‘채움과 비움의 미학’에 담겼어요. 풍선을 보면 표면적인 형상은 그대로 있지만, 내면적인 본질인 공기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잖아요. 인생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Value enjoy Balloon & Air, 2018

▶ 1 Value enjoy Balloon & Air, 2018  ⓒ고홍석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며, 눈꽃, 2018

▶ 2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며, 눈꽃, 2018
3, 4 ‘채움과 비움과 미학’ 전시, 2016
5 ‘함께 ing’ 전시 중, 상상초월, 2015  ⓒ고홍석

올해 열린 전시의 이름은 ‘예술은 생각하지 마!’다. 벌룬 아트가 예술인가, 아닌가의 고민을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하자는 의도를 담았다.

“문이 열리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길 바랍니다. 예술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고민이 의미 없어질 정도로요.”

그의 전시는 11월 10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성수동에 있는 갤러리 ‘쿰’에서 열렸다.

풍선아트는 ‘미리 제작’이 안 된다. 전시 때마다 라이브로 진행된다. 인터뷰가 진행된 11월 9일, 고홍석 작가와 그의 팀은 전시를 하루 앞두고 가장 분주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해외에서 전시를 해도 마찬가지예요. 미리 만들어서 운반할 수 없기 때문에, 현지에서 작품 제작을 시작합니다. 물론 어떤 작품을 할지는 이미 구상해둔 뒤지만, 그걸 실현하는 건 전시 직전이죠.”

전시를 할 때마다 그 당시의 고홍석 작가의 고민과 마음이 담긴다. 풍선은 언제든 그의 예술혼을 받아준다. 하지만 이별은 금세 찾아온다. 전시가 끝나면, 작품들 안에 공기를 터뜨려 다시 ‘무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도 그의 작업 중 하나다.

“매번 아쉽습니다. 풍선이라는 재질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풍선을 좀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풍선은 그물 형식으로 조직돼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그 그물 사이가 벌어집니다. 그 공간을 메울 수 있는 물질을 넣어주면 풍선의 수명이 조금은 오래갈 수 있죠. 그렇더라도 전시가 끝나면, 저는 제 손으로 작품을 터뜨립니다. 그때의 서운함과 아쉬움이 다시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됩니다.”

고홍석 작가가 만들고 싶은 세계는 아직도 많다. 그는 자연스럽게 사람들 마음속에도 풍선 아트의 자리를 만들고 있다. 훗날에는 벌룬 아트를 테마로 한 공원이나 전시관도 만들고 싶은 게 그의 바람이다.

“보이지 않는 공기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저에게는 항상 새롭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캄캄한 암실 같은 방도 만들었습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작품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슬기 위클리 공감 기자 20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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